게임실행 및
홈페이지 이용을 위해
로그인 해주세요.

내 나이 스물넷, 군대 전역하고 복학하기 전까지 그 애매한 공백기 있지? 딱 그때였다. 남들 다 롤 플래티넘 다네 마네 하면서 밤새울 때,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초등학교 때나 까작거리던 일렌시아를 다시 다운받았다. 다들 알다시피 이미 정상적인 게임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인, 매크로와 고인물들만 남은 유령선 같은 게임이다.
그날도 평소처럼 로랜시아 마을 남쪽 광장에서 의미 없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캐릭터 머리 위에 대화창 띄워놓고 멍 때리는 게 일과였으니까. 근데 내 옆에 웬 뉴비 티가 팍팍 나는 여캐 하나가 멈춰 서더라. 장비는 기본 옷을 입고 말이다. 요즘 세상에 매크로도 아니고 이런 쌩뉴비가 있다고?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는데, 그 캐릭터가 나한테 말을 건넸다.
그게 그녀, '연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요즘 3D 게임처럼 화려한 보이스 채팅이 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모니터 하단에 한 줄씩 올라오는 투박한 하얀색 글자가 전부였다. 근데 그 서툰 타이핑에서 묘한 인간미가 느껴지더라. 알고 보니 복고풍 도트 게임을 찾다가 우연히 일렌시아에 흘러들어온 진짜 대책 없는 생짜 뉴비였다.
그날부터 내 일렌시아 목적은 매크로 돌리기가 아니라 연이랑 같이 게임하는거로 바뀌었다. 연이는 사냥보다 맵 탐험이나 아기자기 한걸 좋아해서 일랜시아에 있는 온 맵을 뛰어다녔고,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길을 안내했다.
에필로리아의 하얀 눈밭을 같이 걸을 때였나. 캐릭터 두 개가 나란히 앉아서 모닥불 아이템 하나 켜놓고 채팅을 나누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현생은 방구석 백수인데, 모니터 속 세상은 필터라도 끼운 것처럼 반짝거렸다. 우리는 게임 얘기로 시작해서 대학교 생활, 서로 좋아하는 음악, 심지어 군대 전역하고 느낀 막막함까지 털어놓기 시작했다. 넷카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런 건 이미 안중에 없었다. 그냥 매일 밤 10시, 로랜시아 은행 앞에서 걔를 만나는 시간만 기다려질 뿐이었다.
사건은 만난 지 한 달쯤 되던 날 터졌다.연이가 기억은 안나지만 뭐 달성을 했는데.. 우리는 나름대로 자축을 한답시고 우리만의 비밀 장소였던 포프레스네 남쪽 깊은 숲속으로 갔다.
거기서 노가리 끼고 노는데, 연이가 한참 동안 말이 없더라. 잠수인가 싶어 "연이야?" 하고 치는 순간, 아래 채팅창에 툭 떨어진 한 마디.
그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랜선 너머의 존재가 내 현실의 경계를 밟고 쓱 들어오는 기분. 손끝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2부에서 게쏙
레벨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