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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프레스네 깊은 숲속, 모닥불 아이템 하나 켜놓고 마주 앉아 있던 연이의 캐릭터 머리 위로 내 얼굴이 보고 싶다고 물어봤다. 그래서 나는 순간 키보드 위에 올린 손가락을 멈췄다. 화면 속 내 전사 캐릭터는 미동도 없었지만, 내 심장은 방구석이 떠나가라 뛰고 있었다.
당시 일랜시아는 정상적인 유저보다 매크로랑 넷카마가 판치는 세기말 상태였다. 머리로는 혹시 모를 낚시나 털털한 형님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한 달 동안 매일 밤새우며 나눈 대화의 밀도가 내 의심을 찍어눌렀다. 걔가 던진 그 한 마디는 2D 도트 속에 갇혀 있던 우리 관계를 3D 현실로 끌어내리는 도화선이었다.
내가 애써 덤덤한 척 평범하게 생겼다고 타이핑을 치자, 연이한테서 바로 카톡을 하냐는 답장이 왔다. 그렇게 나는 카톡 아이디를 달라고 했고 카카오톡에 연이를 친추했다. 프로필 사진을 확인하는 그 순간의 긴장감은 군대 신교대 배치 조회할 때보다 더했다. 숨을 참으며 확인한 연이의 프로필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맑게 웃고 있는, 내 또래의 평범하고 단아한 여대생의 모습이 있었다. 넷카마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현실의 존재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카톡을 시작하니까 거리감이 광속으로 좁혀졌다. 게임에 접속하지 않는 낮 시간에도 점심 메뉴같은 같은 소소한 일상적인 문장들이 오갔다. 일랜시아 안에서 걔가 내 가이드라인이었다면, 카톡에서는 서로의 일상이 링크되기 시작한 것이다. 알고 보니 서울에 살고 있어서 내가 있는 곳과 그리 멀지도 않았다.
카톡을 터튼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자연스럽게 이번 주말에 한번 보자는 말이 나왔다. 약속 장소는 신촌의 한 카페였다. 약속 당일, 나는 옷장 구석에 처박아둔 그나마 제일 깔끔한 셔츠를 꺼내 입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몇 번이나 만졌는지 모른다. 맨날 모니터로 찌질하게 게임만 하던 백수 놈이 진짜 현실에서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긴장됐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저 멀리 창가 자리에 카톡 프로필에서 본 그 얼굴이 보였다.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갈색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폰을 만지고 있던 그녀였다. 내가 침을 한번 삼키고 걔 자리로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연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던 그 0.1초의 정적 속에서, 화면 속 20픽셀짜리 도트 여캐가 아니라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는 진짜 현실의 연이가 내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걔는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일랜시아에서 자주 쓰던 이모티콘처럼 활짝 웃으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랜선과 현실의 경계선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3편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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